015B

该歌手共有多少0首吉他曲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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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B的艺人档案 활동정보 Group | 대한민국 | 결성: 1989현재멤버 장호일 (기타), 정석원 (작곡, 건반, 작사)스타일 발라드 (Ballad), 팝 (Pop)■ 空一烏飛015B(공일오비)는 1989년 정석원, 장호일, 조형곤 이 세 멤버들에 의해 결성된 밴드로써 조형곤이 미국유학후 탈퇴하고, 정석원의 군대문제로 인해 1996년 마지막 앨범인 6집(The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을 낼 때까지 약 7년동안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을 차지하며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그들의 뛰어난 음악성으로 화려함보다는 단순함, 웅장함보다는 투박함의 음악을 추구했으며 예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한 그룹이었다.공일오비란 한자로 空一烏飛이며 글자 그대로 ''공중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간다''라는 뜻이다. 공일오비는 철저한 스튜디오와 라이브 세션이라는 국내 대중음악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Slow Rap, House, New Jack Swing 등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낯설던 장르의 음악을 계속하여 새롭게 시도하였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여러 장르들의 발전에 공이 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객원가수 도입이란 색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신선함을 주기도 하였다 . 그들은 예술과 Technology의 통합을 꿈꾸며 그들 나름대로 장인정신으로 무장된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 노력해왔다.■ 공일오비와 무한궤도공일오비의 결성은 그룹 ''무한궤도''의 해체와 연관이 깊다. 당시 신해철을 리더로 한 무한궤도는 ''그대에게''로 대학 강변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고, 그 여세를 몰아 무한궤도 정식앨범 1집을 만들었다. 정석원은 당시 ''실험실''이란 그룹의 Keyboardist로 활약하였지만, 그룹이 대학 강변 가요제 1차 예선에서 낙방하고 그 그룹은 해체되었다. 그러나 정석원은 그의 Keyboard Solo를 유심히 보던 신해철의 제의를 받고 무한궤도의 멤버가 된다.무한궤도의 1집이 성공적으로 팔려나가고, 또 방송국 측에서도 여러 출연제의를 해오자 신해철은 다른 멤버들에게 Professional musician이 되어보자고 제의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음악에 걸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다른 멤버들은 하나 둘 여러 가지 이유로 무한궤도를 탈퇴해 갔고, 정석원도 평소 무한궤도에서 활동하면서 신해철이 추구하는 음악이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느껴온 바인지라 그 역시 신해철과 이별한다. (그 후로 신해철은 솔로로 활동을 하게 된다.)정석원은 그의 형 장호일(본명: 정기원)에게 함께 그룹을 만들어 보자고 제의하고, 장호일은 흔쾌히 동의하게 된다. (장호일은 무한궤도의 무대연주에서 자주 기타를 쳐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정석원이 무한궤도 있을 당시에 가장 친근감을 느꼈던 Bassist 조형곤과 함께 ''공일오비''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음악 외의 또다른 개인적인 직업을 갖는다라는 전제아래 아마추어 뮤지션으로써 그룹활동을 시작 하였다.....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판도를 뒤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탄탄한 음악실력을 자랑하는 015B는 신세대들을 대변하는 감성과 생각, 그리고 세련된 사운드와 음악적 감각으로 젊은 층의 지대한 지지를 받아낸 그룹이다.팀의 주축 멤버인 정석원은 1988년 ''강변가요제'' 참가를 위해 ''실험실''이라는 팀을 결성했으나 예선에서 낙방하고 이후 신해철과 함께 015B의 전신인 ''무한궤도''를 결성한다. 무한궤도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 이를 계기로 그들의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되지만 이 한 장의 음반을 끝으로 음악적 견해의 차로 인해 신해철과는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이후 정석원은 조형곤(베이스), 조현찬(드럼), 정석원의 형인 장호일(기타)을 영입해 ''공중에 한 마리의 까마귀가 날아간다(空一烏飛)''라는 뜻을 지닌 015B라는 독특한 이름의 밴드를 결성, 본격적인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정식 보컬리스트가 없었던 이들은 ''객원 가수''라는, 당시에는 이색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여러 명의 외부 보컬리스트를 앨범에 참여시켰는데, 이들의 첫 음반 작업에서는 윤종신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90년 발표한 015B의 데뷔 앨범에서 윤종신이 부른 가 대폭적인 인기를 얻어냈던 것. 이후에도 015B는 지속적으로 객원가수제를 도입, 이장우, 김태우, 김돈규, 조성민, 정연욱 등이 015B를 거쳐간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1991년 발표된 015B의 2집 앨범은 다양한 시도와 참신함, 정석원 특유의 감수성 등으로 무장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당시 환경처의 전화번호를 제목으로 다루면서 환경문제를 다룬 를 비롯, , , , 장호일의 읊조리는 듯한 랩이 인상적인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가요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다져갔다. 또한 1992년 1월 12일, 63빌딩의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던 첫 콘서트에서는 공연장에 입장을 하지 못한 4천 명이 넘는 팬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015B는 1992년 발표한 3집「Third Wave」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다시 한번 다지게 된다. 하우스를 인용한 , 등의 노래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앨범의 모든 곡들을 작업하는 정석원에게는 음악 평단이나 매니아들의 아낌없는 지지와 관심이 이어지게 된다. 1993년 발표한 이 수록된 4집「Fourth Movement」역시 3집과 그다지 변화가 없어보였지만 3집에 이어 대중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이 앨범의 가장 큰 성과는 TV 홍보에 의존하지 않고, 라디오 방송과 공연을 통해 보다 음악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서고자 했고, 또 이를 성공시켰던 앨범이다.1994년, 국내 가요계에 복고 열풍을 만들어낸 5집「Big 5」는 실험적이면서도 완숙한 음악실력을 보여주었다. 조용필의 거대 히트곡인 와 나미의 의 리메이크는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015B가 추구하는 음악적인 색깔을 그대로 살린 리메이크작의 완성된 모델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1996년 5월 발표한 6집「Sixth Sence」는 발전적인 모습과 015B의 인더스트리얼적인 음악적 성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단편영화를 연상케 하는 뮤직 비디오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를 필두로 6집은 015B가 가장 독특하고 창조적인 면에 중점을 둔 앨범이었다.그러나 015B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선언,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현재 015B의 멤버인 조형곤은 유학 후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정석원은 유학 중으로 박정현 4집과 하루(Haru)의 데뷔 앨범 등에서 작곡, 편곡자, 프로듀서로 모습을 비췄다. 장호일은 방송인으로서 가장 대중과 가까이에서 활동하고 있다....